인터뷰 내용 중 서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interview365.com/client/news/view.asp?sidx=4406&ctcd=55
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인장기술을 전통 예술로 격상한 최병훈 인장공예 명장 40년 만에 전시관 겸한 인장연구소 설립 숙원 풀어 / 김두호
작성일 : 2009-11-11
[인터뷰365 김두호] 지름이 보통 1.5cm, 이름을 새겨 넣는 손톱만한 인장(또는 도장) 공간에도 만든 사람의 글씨(書)와 그림(畵), 조각의 창작 혼이 스며있다. 최병훈 (59) 대한민국 인장공예 1호 명장은 인장분야가 1급 기능사의 한계를 뛰어 넘어 명장이 될 수 있도록 처음으로 길을 터놓은 인장공예의 대가(大家)이며 대표 장인이다. 어릴 때 서당에서 공부한 덕분에 한문에 대한 이해력이 깊고 글씨도 한글과 한자 모두 서예가 수준의 독자적인 경지를 확보해 1976년 인장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인장업계에서 돋보이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인장을 새기며 살아온 지 40여년 만에 자신이 사는 동네인 서울 수유동 293-3번지 4.19 탑 부근에 있는 2층짜리 상가 건물을 사들여 전시장, 기념관, 후진양성 등을 겸한 다목적 최병훈 인장공예연구소를 설립했다. 올해 안에 문을 열 계획으로 지금 한창 내부 수리를 하고 있다. 전시 작품 중에는 조선왕조 때의 어보(御寶)와 중국 왕조시대의 어보 자료를 비롯해 자신의 전각 작품과 상형문자를 돌에 새긴 창작 작품 등 수백 점이 포함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인장과 관련된 그의 학구적인 열성과 평생을 두고 탐구하고 수집한 역사적인 기록들이다. 덜 먹고 덜 놀면서 모았다는 돈으로 중국 대만 일본 등지를 수시로 찾아가 역사 자료와 현대적인 변천사를 찾아내고 배우는 인장여행을 반복해 왔다. 국내서도 젊은 시절에는 선배 장인들의 솜씨를 비교 분석하기 위해 150여 개 인장업소를 찾아다닌 이력이 있다.
서명 문화가 일상화 되면서 인감제도의 페지론까지 등장하고 있지만 인장을 작품 세계로 생각하며 외길의 삶을 살아가는 여원(如原) 최병훈 명장에게 인장공예는 여전히 우리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전통예술의 한 부문이다.
이하 내용 보러가기
http://www.interview365.com/client/news/view.asp?sidx=4406&ctcd=55
'보도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양대박물관-'한국인과인장'-한국일보뉴스(2011.5.19|) (0) | 2011.11.05 |
---|---|
한국건설경제신문 - 2010년 2월 5일자 기사 (0) | 2011.11.05 |
1cm, 작은 공간의 예술 ‘인장’ 인장공예 명장 ‘최병훈' (0) | 2010.10.25 |
2008 대한민국 장인 박람회 (0) | 2010.10.25 |
월요신문(2007.6.11) - 인장 공예 명장 최병훈 (0) | 2010.10.25 |